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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버님, 평양 대동보안서 수감
1946.08.11, 북한 평양

참아버님, 평양 대동보안서 수감 (1946.08.11, 북한 평양)


평양에서 참아버님의 교회가 은혜로운 역사로 활기를 띠게 되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자기 교회로 나가지 않고 참아버님이 계신 곳으로만 참석하게 되니 그들이 속해 있던 교회 목사와 장로들이 참아버님 집회소에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고 일부 교인을 납치하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자 그들은 공산당국에 참아버님을 남한에서 온 수상한 인물이고 불법집회를 하는 자(복중교와 유사한 단체의 지도자이며 이승만의 첩자라는 혐의)로 고발하게 되어 1946년 8월 11일 대동보안서에 갇히시게 되었다.

참아버님은 대동보안서 안에서 신령교단의 교주를 만나 평양을 중심으로 공식노정을 출발해야 할 것을 아시고 감옥에 들어가시게 되었다. 그곳에는 복중교 교주인 허호빈과 그를 따르는 간부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참아버님은 허호빈의 복중교 간부를 대동보안서 안에서 만나 그들을 설득해 그들과 함께 공식노정 출발섭리를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허씨의 불신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허씨에게 보낸 쪽지가 보안서 당국에 발견되어 참아버님은 모진 고문을 당해 빈사상태로 보안서 밖으로 내처지게 되었다.



 

<말씀>


1946년 6월 공산당은 이북 전역에서 새로운 종교단체에 대한 탄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와 유사한 단체가 있으면 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때에 아버님은 평양 경창리에서 전도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남에 있다가 이북으로 갔느냐? 그 당시 한국은 신앙의 중심지가 평양이었고, 또 거기에서 역사적인 신앙의 투쟁이 엮어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늘이 준비해 놓은 기반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이북에 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전도활동을 하다가 8월 11일 공산당에게 잡혀 대동보안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참3.1.2:16, 024-192, 1969.08.10)
 

아버님이 공산당 치하에 있는 이북으로 넘어갔는데 그만 잡혀 들어갔습니다. 내가 이남에서 왔다고 해서 이승만의 앞잡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조사를 해보아도 근거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박수무당이니 사회를 문란케 한다느니 해서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때 매도 참 많이 맞았습니다. 고문도 많이 당했고 천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길을 걸어 나온 사람입니다. 아주 극적인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들이 소망에 찬 내일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참7.1.2:2, 020-027, 196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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