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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버님, 흥남감옥 출감
1950.10.14, 북한

참아버님, 흥남감옥 출감 (1950.10.14, 북한)
 

1948년 2월 22일 주일 아침, 참아버님께서는 기성교단의 질시와 공산당국의 종교말살정책이 야합한 가운데 평양내무서에 구금돼셨다. 평양 기독교 지도자 83명의 공동명의 투서로 이승만의 스파이, 부녀자 재산 갈취, 사회질서 문란 등의 무고한 혐의가 씌워졌다. 4월 7일 공판에서 재판장은 사건 심리와 무관한 질문과 요식절차를 거친 후 사회질서 문란죄로 단심 5년형을 언도했다. 이후 5월 20일, 평양형무소에서 흥남(興南) 특별노무자수용소(사진)로 이송되셨다.

흥남감옥 시련은 재림메시아로서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 가시기 위한 탕감섭리노정이다. 재림메시아도 기독교인들이 반대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같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 나와야 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잃어버린 12명 이상의 제자를 십자가상에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의 흥남감옥은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십자가와 다름없었다. 참아버님은 이곳에서 12명 이상의 제자를 찾아 세워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가기 위한 탕감노정을 완수하셨다.

1950년 10월 14일 참아버님께서 2년 7개월 21일만에 흥남감옥에서 출감하셨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유엔군의 상륙으로 공산군이 물러가자 제자들을 데리고 흥남 감옥을 나오셨다. 참부모님께서는 이날을 이북출감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무죄로 석방(1955년)된 10월 4일을 이남출감일로 매년 기념하셨다. 특히 이날 1982년 6000가정 축복식, 2000년 영계해방식(사진) 등 섭리적으로 중요한 행사를 거행하셨다.



 

<말씀>


아버님은 이북 평양과 흥남감옥에서 2년8개월의 예수님 공생애에 해당하는 기간을 보냈고 열두 사람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열두 사람을 복귀함으로써 예수님이 잃어버렸던 모든 조건들을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그 사람들이 아버님을 따르지는 않았어도 아버님이 석방되었을 때 그들의 자리에 다른 사람들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계획했던 모든 것을 완수했기 때문에 하늘은 천사장 국가인 미국과 유엔군을 통해 북한을 공격하게 해서 아버님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네 사람이 나를 따랐습니다. 유엔군이 남한을 지켜 주었기 때문에 그 조건으로 하늘의 운세는 다시 민주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기독교를 복귀하기 위한 역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참3.1.4:4, 052-185, 1971.12.29)
 

예수님이 죽음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배반했고 사랑하는 세 제자까지도 배반했습니다. 그러기에 탕감복귀 원칙에 의하여 감옥에 있을 때 예수님이 잃어버렸던 열두 제자와 같은 수를 탕감복귀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아버님이 흥남감옥에 있을 때 입을 열지 않았어도 제2 이스라엘권 내에 있는 영계의 영인들이 전도해서 그 수를 채워 주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 나왔습니다. 공산당의 삼엄한 감시와 주목을 받는 옥중생활에서도 남이 모르는 심정적인 단결운동을 하나님이 책임지고 해주셨습니다. 거기에서는 드러내 놓고 전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영계에서 전도해 주었습니다. (참3.1.4:5, 016-059, 1965.12.26)
 

10월 14일은 흥남감옥에서 나온 날입니다. 그곳을 들어갈 때 내가 얼마나 기가 찼겠습니까? 어떻게든지 살아 나가야 합니다. 살아남으려면 죽겠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래서 노동하는 데서, 언제나 그 일터에서 표적 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이 나였습니다. 그것이 살아 나가는 비법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수십 명도 아닌 1천 명에 가까운데 간수들이 나를 선정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재료로 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습니다. 아버님이 이런 길을 달려 나와서 뜻을 이루어 나왔습니다. 한 많은 복귀의 고개를 넘는 책임자가 어디 갔느냐는 것입니다. 민족의 원한, 세계 기독교가 실패한 원한, 저주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고 소화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그분 편이 되어 내 길을 재창조해서 기독교문화권 이상을 나를 중심삼고 편성해 나왔습니다. (참3.1.4:6, 220-078, 199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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